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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30 [세계문학] 베르톨트 브레히트 - 서 푼짜리 오페라 (1)

 


어둠 속에 있어야 할 것이 빛 속에 있을 때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 푼짜리 오페라’를 읽고


 


문 선 경



 밝은 대낮, 달리는 차 안에서 멍청한 시선을 창 밖에 걸쳐두고 있던 중, 돌연 저편 도로 위에 치어 죽은 강아지(였던 것)의 시체를 볼 때, 그 검은 껍질과 시뻘건 살덩어리가 어지러이 뭉개진 흔적 어딘가에서 우리의 의식은 또 한 번 미세하게 구겨진다. 뒤이어 차에서 내려 도로를 걷는 빽빽한 인파들, 그 사이를 터무니없이 가르고 있는 어느 고개 숙인 걸인의 웅크린 상반신, 그 절반의 그림자 위에서 우리의 의식은 또 한 번 소리 없이 깨어진다. 그것은 마치 어둠 속에 있어야 할 것이 빛 속에 있을 때, 지식의 범위 안에 있으나 상식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할 때, 따라서 도무지 보고도 듣고도 싶지 않은 것의 형상을 아무 예고도 없이 스스로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수용해야만 할 때의 비극이다. 그것이 왜 ‘비극’인가는 분명하다. 우리들 눈앞의 일그러진 풍경을 바로잡기에 우리의 손이 너무도 작고 보잘 것 없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 대부분은 이 놀라움과, 당황스러움과, 불편함이 뒤섞인 카오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소심히 시선을 돌린다, 눈을 감는다. 


 그런데 여기, 이 깊은 어둠 속에 기어코 스포트라이트를 들이대는 극작가가 있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이트는 그의 희곡작품 『서 푼짜리 오페라』에서 걸인들의 구걸, 도둑들의 도둑질, 그리고 창녀들의 매춘행위가 난잡하게 포진한 19세기 말 런던의 그늘진 거리를 정숙해야 마땅할 오페라 무대의 한 가운데로 보란 듯이 옮겨 놓았다. 그리고는 거리의 유행가, 장타령을 정신없이 섞어가며 눈을 꼭 감고 있던 독자를 머리가 얼얼해질 만큼 흔들어 깨운다. 악명 높은 신사 강도 칼잡이 ‘매키’로부터 야밤에 남의 집 마굿간에서 결혼식을 올린 딸 ‘폴리’를 되찾기 위해 경시청장 ‘브라운’을 압박하는 거지왕 ‘피첨’,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음모와 배신의 사건들은 가족, 결혼, 우정, 사랑, 신뢰, 도덕 그 모든 것이 허울에 지나지 않는 자본주의적 사회 질서와 인간관계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긍정적인 의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온갖 배신과 욕망의 가락은 서푼어치도 되지 않을 인간 매키 매서에게 영국 여왕이 사면 및 신분 상승을 베푸는 다소 황당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 불협화음은 책을 덮는 독자에게 결코 서푼짜리일 수 없는 삶의 무거운 고민을 부과한다.


 『서 푼짜리 오페라』에서 매키 매서에게 내려지는 사형선고는 정당한가? 물론 그는 이 도시를 둘러싼 도둑질, 방화, 살인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이자, 여인에 대한 지조도 없이 성적인 욕망에 철저히 사로잡힌 채, 온갖 위기의 상황을 돈으로 모면하여 벗어나려 할 만큼 사악하고 비굴한 캐릭터이다. 따라서 그 정도의 개인에게는 응당 사형이라는 죄 값이 합당하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 죄 값의 문제는 그리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교수대에 오른 매키 매서의 그림자 속에 드리워진 모순된 현실의 무게가 그 한사람만의 몫일 수 없기 때문이다. 매키 매서가 교수대에 오른 이유는 직접적으로 법보다 돈의 문제에 더 깊이 관련되어 있다. ‘피첨’은 자신의 거지사업이 방해될 것을 염려하여 그를 잡아들이려 했고, ‘제니’는 돈에 매수당하여 그를 밀고하였으며, ‘브라운’은 대가가 불충분했기에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법은 명목상의 허울일 뿐, 돈이 실질적인 사회의 질서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몰락해가고 있는 계층의 몰락해가고 있는 대표자’의 얼굴에서 다른 무수한 얼굴들을 떠올리며, 매키 매서 한 사람을 사형시키는 것만으로는 결코 현실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사형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복잡한 문제 앞에 ‘여왕의 사면’이라는 비현실적인 결말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단 서푼어치 희망의 메시지도 허락하지 않는다. ‘왕의 말 탄 사신이 언제나 온다면 우리 삶은 쉽고 평화로울’ 테지만, 현실 속에서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음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에게 ‘몰락해가고 있는 계층의 몰락해가고 있는 대표자’가 몰락하는 것이 마땅한 현실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비현실적인 반전으로써 오히려 우리의 암울한 현실을 더 고착화하는 비극인 것이다. 여왕의 사면은 희곡 안에서도, 밖에서도 우리의 정답이 되지 못한다. 매키 매서라는 죄 많은 인간이 계속 살아있는 런던은 그의 생사여부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돈의 질서에 의하여 또 무수한 범죄들로 가득찰 것이다. 심지어 여왕의 사면 따위 기대할 수 없는 무력한 현실은 ‘비명이 울려 퍼지는 이 골짜기’ 속의 하류 인생들을 차갑게 얼려 버릴 것이다. 결국 그 무엇도 해법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이 극은 철저한 비극이다. 등장 인물 뿐만이 아니라 읽는 독자마저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아니, 사실은 우리 모두가 무력하고 어리석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비극인 것이다.


 『서 푼짜리 오페라』를 읽고 난 후 마치 강아지의 찢긴 시체와 다리 없이 웅크린 걸인의 형상과도 같이 독자의 의식을 집요히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던 괴로움의 실체는 ‘고난이 가장 클 때 도움이 가장 가까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도록 만드는 우리의 현실과, 그에 대한 우리 모두의 무력감이 뒤섞인 비극 그 자체였다. 자본주의적 경쟁에서 소외된 것만 같은 거지들의 세상에서도 물질과 예속의 질서는 다시금 무한히 반복되고, 여전히 사랑과 우정과 신뢰의 일체는 배신, 불신, 기만의 상처로 얼룩져있다. 가끔씩 세상이 아름답게 빛나는 듯한 풍경 뒤에는 또 어느 이름 모를 이의 차갑게 얼어붙은 어둠이 눈물방울처럼 서려있을 것인지. 어둠 속에 있어야 할 것이 빛 속에 있을 때, 그 당황스럽고 불편한 의식의 교란을 헤집고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 이 오페라를 향하여 던지는 서푼은, 그 무기력함 지우기 위해 지불한 값이 아닌, 도리어 우리의 무기력한 침묵이 현실에 지고 있는 빚에 대한 단 몇 푼의 이자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그러한 빚은 도무지 청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Posted by 문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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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2 2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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