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자궁이 품는 생명력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
문 선 경
1.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올리도다(12110-12111행)
파우스트의 구원은 초월적인 자기실현 의지로부터 온다. 그리고 그 의지는 텍스트의 말미에 ‘영원히 여성적인 것’으로 표현된다. 이 자기 실현 의지와 여성의 생산성을 결합했을 때, 12,111행에 달하는 웅장한 드라마는 결국 파우스트가 스스로를 초월하여 또 다른 자기 자신을 탄생시키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파우스트의 자기 탄생 과정과 견주어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헬레나의 탄생 과정이다. 헬레나는 파우스트가 추구하는 고전미의 정수이자 이상의 분신이다. 따라서 3000년 전의 그녀를 현실 속에 재탄생 시키는 과정은 파우스트의 자기 탄생 과정을 구성하는 일부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파우스트가 헬레나의 환상을 접한 이후 그녀와 현실에서 대면하는 과정 사이에 조금은 이질적인 성격의 장면,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이 삽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 괴테는 1826년에 헬레나 막을 먼저 완성시켜 놓고 1831년 81세가 되어서야 이 장면을 새로이 채워 썼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장면에 부여하는 의미가 특별했던 것이다.
본 글은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이 등장해야만 하는 존재 이유가 무엇이고, 이 장면이 [파우스트]극 전체에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과 어떠한 관련을 가지며, 괴테가 이것을 통해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글쓴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려 한다.
2.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이 시작되기 전 파우스트는 시공을 초월한 ‘어머니들의 나라’로 가서 환영(幻影)의 궁성에 도착해 헬레나를 발견한다.
파우스트 뭐 납치라고! 내가 이 자리에서 멍청이가 될 줄 아느냐! (6549행)
이 열쇠가 아직 내 손 안에 있지 않으냐!
이것이 날 인도하여 고독의 공포와 파랑을 헤치고
여기 안전한 해안으로 이끌어준 것이다.
여기에 나는 굳건히 서 있다! 여기에 모든 현실이 존재한다.
여기서부터 정신이 정령들과 싸우고,
위대한 이중세계를 세울 수 있다.
그렇게 멀리 있던 여인이 어찌 더 가까워질 수 있으랴!
내가 그녀를 구하겠다. 그러면 그녀는 이중으로 내 것이 되리라.
자, 용기를 내자! 어머니들이여! 어머니들이여! 용납해 주소서!
그녀를 알게 된 자, 그녀를 놓칠 수 없으리라. (6559행)
그러나 그가 헬레나에게 손을 뻗치는 순간 폭발이 일어나 그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여기서의 폭발은 현실과 초현실의 괴리에서 비롯된다. 폭력적이고 단순한 방식으로는 초현실적인 헬레나의 환영을 파우스트의 현실로 옮겨올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고대 세계의 질서를 구현하기 위해선 그 밑바탕이 되는 현실이 고대 세계를 능동적으로 흡수하고 해석하는 변용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괴테는 호문쿨루스를 통해 파우스트의 내적 성숙을 위한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을 준비했다. 현실과 초현실이 조화를 이루는 ‘위대한 이중세계’는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에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파우스트의 영혼 위에 세워질 수 있는 것이었다.
3.
마녀 에리히토 음침한 마녀인 나 에리히토는 전에도 종종 그랬듯이
오늘 밤에도 저 무서운 축제에 참석하렵니다.(7005-7006행)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은 그 시작에서부터 ‘무서운 축제’로 비유된다. 왜 ‘무서운’ 축제일까? 그것은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이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그리스 신화의 온갖 형상들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이 밤의 축제에는 그리스의 신들, 반인반수의 괴물들, 그리고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 등이 한데 어우러져 기존의 신화적, 역사적 맥락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결합을 시도한다. 그 결합은 기존 신화와 역사가 끝난 시점부터 새롭게 창조되고 약동하여, 하룻밤 사이에도 산이 생겨나는 공간(7807행)으로 그려진다. 이 그리스적인 공간 안에 기독교적인 배경을 가진 메피스토펠레스는 다소 무기력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메피스토펠레스 (몸을 떨면서) 아직도 난 똑똑하지 못한 모양이야.
북쪽에서도 엉망이더니, 여기서도 엉망이구나.
결국 이 그리스적인 환상이 가득한 공간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기독교적인 캐릭터를 잠시 벗어두고, 포르키아스 자매 중의 하나로 변신하게 된다. 이는 악마에게 굴욕적인 사건임과 동시에 이를 위하여 파우스트를 내버려둠으로써 이 밤 동안만큼은 그에 대한 통제권을 잠시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면 혼을 쏙 빼어버릴 듯이 산만하고 과장된 생명력 속에서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와 달리 매우 의연하고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파우스트 (다가오면서) 놀라운 일이로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구나. (7181행)
추악한 것에도 위대하고 힘찬 모습이 깃들여 있도다.
나는 벌써 행운을 예감하노니,
이 진지한 시선이 날 어디로 이끌어줄까!
(스핑크스를 향해)
그 옛날 이것들 앞에 오이디푸스가 서 있었겠지.
(지레네들을 향해)
이것들의 유혹이 두려워 율리시즈는 삼끈으로 자기 몸을 묶었겠지.
(개미들을 향해)
이것들에 의해 최고의 보물이 저장되었지.
(그라이프들을 향해)
이것들에 의해 충실히, 그리고 실수 없이 보관되었지!
맑은 정신이 내 몸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구나.
형상이 위대할수록 기억에 남는 것도 위대하도다. (7190행)
반면, 인간 내면의 온갖 기괴한 원형들이 그리스의 심상을 빌어 형상화 되어있는 상황 속에 파우스트는 이들에 의해 중심을 잃거나 휘둘리지 않는다. 오히려 뚜렷한 주관과 의식을 가지고 눈앞에 있는 대상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며 신화와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에 자신을 참여시킨다. 즉, 그리스적인 초현실을 주관적으로 변용시킴으로써, 자신의 현실을 새로운 신화와 역사로 재편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과거 헬레나의 환영을 거침없이 붙잡으려하던 폭력적인 태도로부터 한층 성숙한 것이다. 마치 파우스트가 자기 영혼의 내면에 헬레나로 대변되는 그리스적인 조화와 이상을 조심스러우면서도 능동적인 방식으로 잉태한 것에 비유될 수 있다. 말하자면,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은 [파우스트]극 전체에서 파우스트의 이상을 잉태하고 탄생시키는 영혼의 자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의 자궁은 모든 아름다운 이상의 총체인 헬레나의 잉태를 계기삼아 파우스트를 한층 더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밑바탕 삼아 그 안에서 발전된 인류애가, 궁극적으로는 파우스트 자신의 탄생이 가능했던 것이다.
4.
헬레나를 향한 강렬한 그리움에 사로잡힌 파우스트를 보고 그리스의 신인 히론과 만토가 다음과 같은 대화를 한다.
히론 소문이 자자한 오늘 밤 축제가 (7482행)
이 사람을 휘몰아 예까지 데려왔지.
헬레나에게 미쳐
그녀를 얻으려 하지만,
어떻게,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고 있단다.
무엇보다 아스클레피우스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다.
만토 불가능한 것을 갈망하는 자, 그런 사람을 전 좋아해요. (7488행)
여기서 우리는 파우스트가 바로 ‘불가능한 것을 갈망하는 자’이기 때문에 헬레나 역시 파우스트에 의해 완전히 소유될 수는 없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이를 알고 있는 히론은 그의 불행의 근원이 되는 욕망을 치료하려고 한다. 그러나 만토는 오히려 그 욕망으로부터 파우스트라는 인간의 매력을 찾아내고 있다.
파우스트의 이런 면모를 닮은 등장인물이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의 후반부에 중심있게 그려진다. 바로 호문쿨루스이다. 그는 육체를 획득함으로써 인간이 되려고 한다. 마치 파우스트와 같이 불가능한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그는 바다 안에서 갈라테아와 결합하면서 소멸한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한 비극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탈레스의 경우는 ‘괴로운 신음소리가 쟁쟁이 들리는 것 같다(8471행)’며 호문쿨루스의 선택을 안타까워하지만, 지레네들은 그것을 ‘거룩한 불길(8480행)’로 여기며 만물의 시초인 에로스를 찬양한다. 즉, 호문쿨루스의 소멸은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자의 비극으로만 그치지 않고, 물과 불의 만남 및 화해를 이끌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호문쿨루스와 관련된 괴테의 양면적인 설정은 나아가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로 확장될 수 있다. 파우스트 영혼의 자궁은 헬레나라는 ‘불가능’을 품지만, 그 충실하면서도 치열한 여성성으로 인해 그의 자궁은 끝내 ‘구원’이라는 가장 강력한 생명력을 탄생시킨다.
5.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은 결코 의미 없는 사건의 지연(遲延)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과 초현실의 부조화를 넘어서 고대세계의 아름다움을 파우스트의 현실로 이행시키는 주관적 변용의 끈기 있는 기록이다. 자신의 욕망에 너무나도 충실하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반응하는 파우스트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헬레나도 없었고, 이후의 인류애도, 파우스트 자신의 탄생도 불가능했다. 영혼의 자궁이 불가능을 품어 구원을 탄생시켰듯이, 그는 끝내 그 자신을 신화와 역사의 한 페이지에 참여시켰다.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해산의 고통을 겪는 파우스트의 구원은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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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 입니다
방대한 양 중에 일부를 조명한 것인데도
워낙 다룰 내용이 많아서 압축적으로 쓸 수밖에 없더라구.
행에 대한 오해가 풀려서 다행인걸 ㅎㅎ